[포쓰저널] 마약 사범은 급증 추세인데 처벌은 여전히 솜방망이다. 재벌 등 유력층 마약사범에 대해서는 법원이 유달리 봐주기 판결을 반복한다는 지적이 많다. 일부 판사들의 안일한 상황인식이 마약 확산에 되레 기름을 붓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정종관)는 26일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홍정욱 전 한나라당 의원의 장녀 홍모(20)씨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17만8537원 추징과 보호관찰도 명령했다. 1심과 동일한 형량이다.
 

홍정욱 전 한나라당 의원. 그의 딸은 미국에서 대마카트리지와 LSD 등을 밀반입하다 적발됐지만 26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자료사진=뉴시스

재판부는 "홍씨는 유명인의 자식이지만 그 이유로 선처를 받아서도 안 되고, 더 무겁게 처벌 받을 이유도 없어 일반인과 동일하게 판단했다"면서 "홍씨의 나이가 아직 어리고 전과가 없으며, 국내로 반입한 마약도 판매목적으로 보이지는 않아 마약확산의 위험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약 유혹에 굴복한 적이 있고 계속해서 유혹이 있을 것인데 또 굴복하면 엄중하게 처벌할 수밖에 없다"며 "마약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모든 조치를 강구하라"고 했다.

홍씨는 지난해 9월27일 오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던 중 대마 카트리지와 향정신성의약품(LSD) 등을 여행용 가방과 옷 주머니 속에 숨겨 밀반입하다 적발됐다. 

같은 해 4월 중순~9월25일 미국 등지에서 대마를 7회 흡연하고, 대마 카트리지 6개를 매수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홍씨에게 징역 5년을 구형한 바 있다. 

판사가 마약의 심각성을 이해했다면 홍씨에게 "유혹을 이겨내라"는 식의 훈계로 처벌을 끝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19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 사범은 2018년의 1만2613명보다 3431명(27.2%) 증가했다.

홍씨 같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른바 신종 마약이 급속히 확산하는 영향이다.

지난해 마약류 압수량은 362㎏으로 전년도의 415㎏보다 줄었다. 하지만 신종 마약류는 2018년 압수량 48.2㎏에서 지난해 82.7㎏으로 71.8% 급증했다.

신종 마약류 중 대마오일, 대마젤리, 대마쿠키 등 대마계 제품류와 최음제로 사용되는 ‘러쉬’(알킬 니트리트류) 등 압수량은 같은 기간 23.2㎏에서 61.9㎏으로 167% 급증했다. 

지난해 적발된 마약류 사범의 21.9%(3521명)가 20대, 25.7%(4126명)가 30대로 20~30대가 전체 마약류 사범의 절반에 가까웠다.

상황이 이처럼 악화되는 데는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크게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런데 실제 판결 결과를 보면 마약사범의 실형 선고 비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2018년 마약사범 1심 재판 결과는 실형(52.4%), 집행유예(40.0%), 벌금(4.0%) 등이다. 

법조계에선 일반인의 경우 초범이라도 실형을 선고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전한다. 

2017년 해외 거주 지인과 공모해 국제 우편으로 대마 10g 가량을 밀반입했다가 적발된 한 일반인은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사례가 있다. 

정작 문제는 홍씨 사례처럼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에서 집행유예 일변도의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사례를 보면 홍씨와 비슷한 재벌 내지 유력층 자녀들의 마약 사건에서는 실형이 선고된 적이 거의 없다.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 미국에서 대마사탕 등 신종 마약을 밀반입하고 상습 흡연한 혐의로 가소됐지만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사진=뉴시스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씨의 경우 2월26일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김형두)에서 징역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1심도 같은 형량이었다. 

이씨는 지난해 9월 미국 로스엔젤레스(LA)에서 입국하면서 대마 카트리지 20개, 대마사탕 37개, 대마젤리 130개 등 변종 대마를 밀반입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지난해 4월 초~8월 말 LA에서 6차례 대마 오일 카트리지를 흡연한 혐의도 적용됐다.

2심 재판부는 "수입한 대마오일 카트리지, 대마 사탕 등의 수량과 규모는 상당히 많다”면서도 “피고인은 범행일체를 시인하고 범죄를 다시 저지르지 않겠다는 취지로 다짐했고 이전에 형사 처벌을 받은 적이 없는 초범”이라는 등의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지난해 11월 변종 대마를 상습 투약한 혐의로 기소된 현대가(家) 3세 정현선씨와 SK그룹 3세 최영근 씨도 유사한 사례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1월 15일 정씨 항소심에서 "범죄는 마약범죄로 죄질이 좋지 않으나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 선고형도 같은 형량이었다.

이에  앞서 진행된 결심공판에서 검사가 솜방이 판결의 문제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검사는 구형 논고에서 “마약류 범법행위가 되풀이되고, 근절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법원의 관대한 판결을 중요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도 결국 1심과 같은 집행유예로 결론을 내렸다.

정씨와 같이 변종 대마를 투약한 혐의로 기소됐던 SK 최씨도 앞서 진행된 항소심에서 같은 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이 대마를 투약 횟수는 정씨가 26회, 최씨가 100회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남양유업 창업주 홍두영 전 명예회장의 손녀 황하나 씨는 가장 강력한 향정신성마약으로 알려진 필로폰(히로뽕) 투약 혐의를 받았지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형을 받는 데 그쳤다. 

보람상조 최요엘 이사. 그는 근래 적발된 재벌급 마약사범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1심에서 징역형 실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전관출신 유력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하는 등 집행유예 판결을 노리고 있는데, 실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