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가습기살균제사건 특별조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정 대상 첫 조사결과 발표에 앞서 특조위 관계자들과 조사를 맡은 한국역학회 등 조사 담당 전문가들이 피해 사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포쓰저널=성은숙 기자] 2011년 발생한 '가습기살균제 사건' 피해자 중 성인 피해자의 절반이 극단적인 생각 (49.4%)을 하고 대부분이 만성적 울분(78.9%)를 겪고 있지만 기업에 배·보상을 요청조차 하지 않은 경우가 86.8%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기업에 배·보상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 중 절반 가까이(49.4%)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피해 인정 판정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가습기살균제 노출 건강피해를 가습기살균제증후군으로 정의하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통합치료지원센터를 구축하여 전 생애적 피해 대응하고 △피해자 범위 규정, 인과관계 입증책임, 배보상 규모와 절차 현실화를 실현하도록 현행 특별법을 즉각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특조위는 분절없는 통합 대응을 위해 "가습기살균제증후군(Humidifier Disinfectants Syndrome, HDS)은 '가습기살균제 노출 후 발생하거나 악화된 폐질환, 천식, 태아 피해 외에도 비염, 피부염, 기관지염, 폐렴, 간질성폐질환, 기관지확장증, 면역기능 저하, 간염 및 간기능 저하 등 가습기살균제 노출 부위를 따라 독성기전을 공유하는 여러 전신의 신체질환(동반질환, 합병증 포함)으로 인한 건강피해를 총칭하는 것'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통합치료지원센터'를 구축해 △one-stop으로 건강피해에 필요한 치료 제공 △'다학제 자살예방서비스팀'이 정신건강 및 심리사회문제 대응 △장기추적 건강피해 모니터링 및 의료이용자료 통합 DB 구축 등 지속관리함전 생애적 피해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특조위는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사실과 노출 이후 질환이 발병 또는 악화된 경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추정 △인과관계 입증책임 기업으로 전환 규정 신설 △정부의 피해지원 항목 및 규모를 확대(기업에 대한 배·보상 청구 적극적 지원 및 일실손해 및 위자료 등 실질적 피해지원금 지급) 등을 내용으로 하는 현행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를위한특별법' 개정을 촉구했다.

특조위 지원소위원회는 18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2019년 6월 13일~ 2019년 12월 20일 학국역학회가 실시한 가습기살균제 피해가정 전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는 전체 피해자 6590명 중 873명(성인 637명, 아동·청소년 236명)이 참여했다.

조사 결과 △성인, 아동·청소년 모두 호흡기질환을 비롯한 '다장기 피해' △우울증, 불안장애, 자살위험 등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 △현행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법·제도에 대한 불만 △최대 759억원의 사회경제적 비용 추정 △41% 수준에 머무른 일상회복 등이 확인됐다.

기존 가습기살균제 피해 질환으로 알려진 폐질환 외에 성인의 경우 비질환(71.0%), 피부질환(56.6%), 안과질환(47.1%), 위염·궤양(46.7%), 심혈관계 질환(42.2%), 내분비계 질환(21.3%), 신장질환(15.3%), 신경계 질환(11.0%), 간 질환(9.9%), 암 질환(5.4%) 등을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청소년의 경우 비질환(86.5%), 폐질환(84.1%), 피부질환(65.2%), 안과질환(49.8%), 주의력결핍행동장애(21.4%), 위염·궤양(11.1%), 발달장애(7.6%), 신경계질환(6.8%), 심혈관계 질환(5.8%), 내분비계질환(3.9%), 간질환(2.9%)를 호소했다.

성인피해자는 우울·의욕저하·불안·긴장 문제(72.0%), 집중력·기억력 저하(71.2%), 불면(66.0%), 분노(64.5%), 죄책감·자책(62.6%), 소진·탈진(37.9%)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동·청소년의 경우 집중력·기억력 저하(44.4%), 불안·긴장(42.5%), 분노(36.2%), 우울·의욕저하(34.3%)를 병원 진단 유무 관계 없이 가습기살균제 노출 이후 발생·악화됐다고 호소했다.

아동·청소년 피해자 중 15.9%는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했고 4.4%는 극단적인 시도를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아동·청소년 피해자 중 과반수 이상이 행복한 삶에 위협을 받는다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편 현행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피해판정 결과가 타당하지 않다는 의견은 83.5%에 달했다.

피해자들은 피해인정 질환이 너무 협소한 것(91.4%), 판정기준이 타당하지 않은 것(88.1%), 판정 관련 자료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점(86.4%), 피해판정위원의 공정성에 대해 신뢰하기 어려운 점(74.1%)을 그 이유로 꼽았다.

또 피해자들 중 87.4%가 인과관계 입증책임을 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해자 개인이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질환과 가습기살균제 간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어렵고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 손실도 막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 중 심화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198가구(생존자 128명, 사망자 59명)에 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최대 759억원으로 추정됐다.

전체 피해 4953가구에 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가구 당 평균 3.8억원으로 단순 환산할 경우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황전원 특조위 지원소위원장은 "한국형 외상후울분장애 자가측정 도구를 활용해 전수 조사했는데 사실상 동일 척도를 적용한 국내외 어느 문헌에서도 이토록 심각한 울분 현황은 보고된 바 없다"며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의 단초는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개정안에 있는 만큼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체에 유독한 원료 물질을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2020년 1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7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사진=뉴시스

애경산업 관계자는 "이날 특조위 발표에 관해 아직 회사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SK케미칼은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한편 검찰은 2016년과 2018~2019년 두 차례에 걸쳐 독성이 있는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애경그룹과 SK케미칼, 이마트 등을 수사해 2019년 7월 전·현직 임원 34명(구속기소 8명, 불구속 기소 26명)을 재판에 넘겼다.

장연신 회장의 사위인 안용찬(62) 전 애경산업 대표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고광현(63) 전 애경산업 대표는 증거인멸 등 혐의로 1심과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고 전 대표는 2월 4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홍지호(71) 전 SK케미칼 대표는 2019년 5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기소 됐지만 같은해 8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부장검사 권순정)가 보석 청구를 인용해 석방됐다.

신현우(73) 전 옥시 대표는 2017년 7월 징역 6년이 선고돼 2018년 1월 25일 확정됐다.

옥시레킷벤키저는 2016년 5월 공식 사과 후 가습기살균제 피해 1급과 2급 판정 피해자 대상 배상을 개시했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중 60% 가까이 되는 3~4급 판정자가 배제되는 배상안으로 진정성 논란이 일었다.

2019년 11월에는 락스만 나라시만 레킷벤키저 CEO가 홈페이지에 사과 서한을 게시했다.

하지만 옥시레킷벤티저 측은 2020년 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증명의 정도를 극단적으로 완화해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피해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것은 사업자에게 과다하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가 2017년 7월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저작권자 © 포쓰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