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오전 11시 30분 공공운수노조 소속 경마기수들과 고 문중원 기수의 유가족이 정부서울종합청사 정문에서 '경마기수 노동건강 실태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마사회의 '선진경마'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김성현 기자

[포쓰저널=김성현 기자] 과반수 이상의 경마기수들의 조교사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부당지시 내용은 다리가 좋지 않거나, 부상당한 말을 타고 경주에 나가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부당 지시를 받았다고 답한 기수들은 기수면허, 조교사면허 등 권한을 가진 한국마사회가 조교사들의 부당지시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11일 오전  민주노총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은 11월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문중원 기수의 유가족과 함께 정부서울종합청사 정문에서 ‘경마기수 노동건강 실태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공공운수노조는 4일 국내에서 활동하는 전체 기수 125명 중 75명이 참여한 노동건강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마사회 내 갑질구조와 기수들의 건강상태 등을 조사했다.

설문결과 응답 기수의 58.57%가 ‘조교사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조교사들은 부상당한 말이나 다리가 좋지 않은 말을 출전시키거나, 기수의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도 말을 타게 하는 등 사실상 부정경마 소지가 다분한 지시를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마사회가 주관하는 경마에는 마방을 배정받은 조교사의 말만 출전할 수 있다. 기수는 조교사와 기승계약을 맺고 지시를 받아 말을 타게 된다.

마사회는 조교사면허와 기수면허는 물론 조교사가 말을 배정받아 관리하는 마방대부 심사 권한도 갖고 있다.

마방대부란 조교사 자격 취득자에게 마방을 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방은 서울경마공원 54개, 부산경남경마공원 33개, 제주경마공원 20개로 한정돼 있다.

마방대부 심사에는 출주율이라는 것이 반영된다. 마방에 있는 말이 얼마나 많이 출전했는냐가 중요하다.

이 같은 심사규정으로 인해 조교사들은 말의 상태가 좋지 못하거나 기수의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말을 타게 한다는 것이 공공운수노조의 설명이다.

또 경주마는 성적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는데 조교사들이 말의 중량이 내려갈 때까지 의도적으로 경기 성적을 떨어뜨리라는 지시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교사와 기수의 기승계약서 상에는 ‘기수는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에 불응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됐으나 조교사의 지시를 거부할 경우 기승기회를 박탈하는 등 보복이 있어 거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이 같은 현실에 경마기수의 건강도 문제가 되고 있다.

설문결과 응답 기수의 61%가 ‘건강하지 못하다’고 답했으며 건강문제로 3일 이상 결근했다는 대답이 전체의 50%를 차지했다.

업무 중 3일 이상의 치료를 요구하는 사고를 당했다고 대답한 비율은 45%에 달했다.

특히 이 같은 응답은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근무하는 경마기수들에게서 높게 나타났다.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 기수들의 3일 이상 결근을 요구하는 사고 발생률은 66%로 서울경마공원(44%), 제주경마공원(35%)보다 높게 나타났다.

공공운수노조는 이 같은 결과가 나온 배경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마사회가 해외 우수 경마장을 표방하는 ‘선진경마’ 도입을 꼽았다.

특히 선진경마에 가장 충실한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기수들의 열악한 처우가 더욱 도드라진다고 지적했다.

기수들의 건강과 상관없이 출주율을 높여야 하는 마사회 내 관행을 ‘출석주의’라고 한다.

출석주의와 기수간의 극심한 경쟁이 겹쳐 기수들의 건강은 등한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경마공원 세 곳의 연간 재해율은 13.89%로 전국 평균 재해율인 0.52%를 25배 이상 웃돈다.

2017년 5월부터 지난달까지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근무한 기수 2명과 마필관리사 2명 등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은 모두 마사회와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와 갑질근절, 기수와 관리사들의 열악한 처우개선을 호소했다.

김혜진 전국불안정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마사회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공기업으로 말산업 육성이 목표다. 그럼에도 마사회는 선진경마라는 이름으로 외국의 투기목적 경마를 운영하고 있다”며 “고 문중원 기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폭로했다. 마사회는 모든 책임을 조교사에게 돌리고 있다. 선진경마라는 투전판 무한경쟁체제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마사회 측은 "제도적인 부분은 각 부서의 의견을 받아봐야한다"며 "다만 고 문중원 기수의 부정경마 폭로에 관해서는 지난달 말 강서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한 상황이다. 수사 결과를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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