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 중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윤씨가 2003년 5월 옥중 인터뷰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MBC '실화극장 죄와벌' 캡처
화성연쇄살인사건 중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윤씨가 2003년 5월 옥중 인터뷰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MBC '실화극장 죄와벌' 

 

[포쓰저널]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이춘재(56)가 '모방범죄'로 일단락된 화성 8차 사건까지 자신의 소행이라고 경찰에 자백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화성 3차 사건은 화성연쇄살인사건 중 유일하게 범인이 잡혀 무기징역 선고까지 받은 건이다.

이춘재의 자백이 사실이라면 당시 경찰과 검찰, 법원은 무고한 시민을 흉악범으로 몰아 사회적으로 매장시켰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유전자(DNA) 검식으로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이춘재가 경찰 수사를 흔들기 위해 허위자백을 했거나 일종의 과대망상증에 의한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찰이 당시 검거한 화성 8차 사건 범인이 진범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화성 8차 사건 범인으로 검거된 윤모(당시 22세, 현재 52세)씨는 당시 1심 재판부터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1988년 9월 18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당시 주소) 농가 안방에서 여중생 박모(당시 13세)양이 성폭행 당한 뒤 목에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자는 부모와 언니 등 가족들이 안방에서 TV를 보던 사이 자신의 방에서 변을 당했다. 

당시 박양의  죽음은 화성 일대는 물론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박양 사건이 나기 불과 한달 전 인근 지역에서 화성 7차 살인사건이 발생한 터였다. 

1986년 9월 첫 사건 이후 2년 사이에 박양까지 8명의 여성이 연쇄강간 살인을 당한 상황이었다. 

경찰은 처음엔 박양 사건의 범인이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과 동일범으로 판단했다.

피해자를 성폭행한 뒤 다시 옷이 입혀진 흔적이 있고 목이 졸린 채 살해된 점 등이 그 근거였다.

경찰과 검찰이 특히 주목한 것은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체모)였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분석 결과 해당 음모가 보통 사람들 것들과는 달리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이 발견됐다.

해당 음모는 '만곡파상모'라는 형태를 갖고 있었다. 이는 음모의 중간 부분이 동그라미 모양으로 똘똘 말려있는 것을 말한다.  

국과수는 해당 음모에 염화나트륨 성분이 유독 많고 범인의 혈액형이 B형이라는 점도 발견했다.

경찰은 음모에 염화나트륨, 즉 소금기가 많고 범행 현장에 음모가 떨어진 것에 착안해 범인이 평소 땀을 많이 흘리고 잘 씻지 않는 특성을 가진 인물일 것으로 추론했다.

경찰은 범인과 유사한 조건을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해 인근 800여명의 음모를 체취해 일일이 국과수에 감정을 맡겨 대조작업을 벌였다.

결국 경찰은 사건 발생 10개월만인 1989년 7월25일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해 검거했다. 

윤씨는 피해자 박양 집과 8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농기계 수리센터에서 숙식하며 일하는 수리공이었다.

경찰은 범행 당시 범인이 담을 타고 넘어들어왔고 안방에 있던 가족들도 모르게 재빠르게 움직인 것으로 미뤄 범인이 힘세고 날렵할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혈액형과 음모 형태를 근거로 체포한 윤씨는 선천적인 소아마비 환자로 한쪽 발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장애인이었다. 

윤씨는 경찰 조사 단계에서는 자신이 범인이 맞다고 자백했다. 

검찰도 이런 윤씨의 경찰 자백과 체모의 조건이 범인의 것과 동일한 특징을 보인다는 점을 이유로 윤씨를 연쇄 살인범으로 기소했다. 

하지만 윤씨는 재판 단계에서 경찰 진술을 뒤엎고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다. 

윤씨 변호인들도 화성 사건 8건을 분석해 차이점을 비교해가며 윤씨의  무죄를 주장했다. 

결국 검찰도 연쇄살인 주장은 포기하고 윤씨에게 박양 사건의 책임만을 묻지만, 윤씨는 이도 부인했다. 

이에 검찰은 유일한 단서인 체모를 원자력연수원에 보내 더욱 정밀한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원자력연구원은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법''을 통해 보통 사람에게는 드문 티타늄 함량이 범인과 윤씨의 체모에 눈에 띄게 많다는 감식 결과를 내놓았다. 

화성 8차 사건 재판과정에 검찰이 제출한 범인의 체모와 윤모씨의 체모에 함유된
화성 8차 사건 범인으로 검거된 윤씨 재판에서 검찰이 제출한 범인의 체모와 정상인, 윤씨 체모에 함유된 알루미늄, 망간, 티타늄 성분 비교 분석표. 검찰은 원자력연구원 분석결과 일반인에 비해 범인과 윤씨의 체모에서 이들 중금속 성분이 유독 많이 검출됐다고 주장했고, 이는 법원이 윤씨에게 살인죄 유죄를 인정한 사실상 유일한 증거가 됐다./MBC '실화극장 죄와벌' 2003년 5월 방송화면 캡처

 

그러나 윤씨 변호인은 이 분석 결과는 통계적 수치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실제로 이 사건 전 까지 국내 재판에서 방사성동위원소 분석법에 따른 분석결과가 증거로 채택된 적은 없었다.

당시엔 이춘재의 범행을 밝혀낸 유전자(DNA)  감식기법은 국내에 들어와 있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주면서 윤씨에게 살인죄를 적용,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항소심과 대법원도 같은 판결을 내렸다.

윤씨는 이후 징역 20년으로 감형돼 청주교도소에서 복역하다 2010년 5월 출소했다.  

윤씨는 2003년 5월 MBC '실화극장 죄와벌' 제작진과의 옥중 인터뷰에서도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며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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