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실 前 여성가족부 차관/現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지난 주 우리들을 모두 아프게 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이주여성을 무차별하게 구타한 가정폭력사건은 아직도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이주여성에 대한 인권보호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다시는 이러한 폭력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총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공분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가해자의 말이 더 가관이었다. 반성은 커녕 “아마도 다른 남자들도 다 그럴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남자들을 싸잡아서 폭력범으로 간주하다니.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내 죄가 면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고, 대한민국 남성들이 다 가정폭력범은 더더구나 절대 아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도 남성들이 별 반응이 없다. 말 같지가 않아서 그런 걸까? 사실이 아니니 무반응이었을 지도 모른다.

집에서 뉴스를 보는 남편도 별 반응이 없다. 오히려 내가 더 기막혀 한다. 어떻게 대한민국 남성들을 한 번에 싸잡아서 모욕할 수 있는지 가정폭력범죄 외에 대한민국 남성 모독죄라는 범죄를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대한민국 남성을 모독하는 이야기는 한 둘이 아니다. 몇 년 전의 이야기이다. 뉴욕에서 회의가 열렸다. 회의 전날 관계자들이 모여서 저녁식사를 했다. 그날의 대화는 회의 주제인 양성평등이었다. 누군가가 기상캐스터 얘기를 꺼냈다. 우리나라의 기상캐스터는 왜 날씬하고 예쁜 젊은 여성들만 할까가 화제였다. 젊고 예쁜 기상캐스터의 미모와 패션은 특정 방송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중파 등 방송계 공통된 이야기이다. 다들 모델 같다. 또 의상은 어떻고? 미니스커트, 몸에 달라붙는 등 감각이 뛰어난 옷들이 총출동한다. 그러니 날씨예보가 아니라 패션쇼를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때의 대화 장소는 미국인지라 미국의 기상캐스터와 비교하는 발언들이 많이 나왔다. 미국은 기상캐스터가 관록과 경험이 풍부해 보이는 중년 남성이나 여성들이 많다. 우리나라는 왜 미모를 내세울까? 한 남성 참석자가 설명한다. “우리 남자들을 위한 배려일 것입니다.” “메인 뉴스가 끝나고 스포츠뉴스를 기다리는 남성들을 위해서 배려하는 게 아닐까요?” 무슨 뚱딴지같은 해석이냐고 펄쩍 뛰는 남성들의 주장은 이랬다. “말도 안 돼요. 그건 남성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대한민국 남성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알고 보니 그 분은 벌써 이를 개선해 달라고 방송 3사에 건의한 행동파였다. 그런데 아직 아무도 시정할 생각을 안 한다고 덧붙인다.

지난 5월에 심양을 방문했는데 일행들과 중국과 합작한 북한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 식탁 서빙 담당자는 23살 혜진양이었다. 진짜 이름인지 가명인지 모르겠지만 옷에 명찰을 달고 있었다. 말도 거리낌 없이 잘하고 얼굴표정도 밝았다. 같이 간 일행들이 북한 사람들을 처음 접하다 보니 음식보다도 북한 생활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일행 중 한 분이 북한도 우리처럼 결혼연령이 늦어지고, 결혼을 안 하려는 경향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밖에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자유롭고 좋습니까? 우리나라 민족 남성이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였다. 그녀의 대답을 듣고 모두 다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에는 남북 동질성에 대한 확인에서 오는 놀라움이나 남성에 대한 집단 평가에서 오는 씁쓸함이 다 녹아 있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글을 쓰다 보니 금년 초의 일도 생각이 난다. 모 기관에서 성희롱예방교육 요청을 받았는데 주최하신 분들의 요청사항이 특이했다. 남성들을 가해자 집단으로 간주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작년 교육에서 강의 내내 남성들을 모두 성희롱 가해 범으로 간주하고 강의를 해서 피교육생들이 마음이 많이 상했고 결국은 강사와의 언쟁으로 비화되었다는 것이다. 성희롱예방교육 강사양성을 주관하는 곳에서도 지침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로 ‘특정 성(性)을 가해자로 몰지 말 것’이라고 예시까지 들어있는데 어찌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아마도 초보 강사의 미숙함이었을 것이다. 강의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교육생들의 공감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강의가 공감은커녕 반감을 일으켰으니 주최 측이 왜 노심초사하는지 이해가 갔다.

예시를 몇 가지 들기는 했지만 이런 예들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례라는 점이 문제이다. 여성에 대한 모독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집에서 솥뚜껑이나 운전하지 왜 나왔느냐’는 여성운전자에 대한 비하부터 ‘여자이니까 그렇지’라는 일반적인 낙인까지 셀 수가 없다.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 발전을 위해 남성과 여성의 더불어 함께 가는 성장은 우리의 당면 과제이다. 대상이 여성이거나 남성임을 떠나서 특정 성에 대하여 특정한 라벨을 붙이는 것은 낙인효과이며 명백한 차별이므로 꼭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 이복실 前 여성가족부 차관/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bslee8812@gmail.com>

저작권자 © 포쓰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