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현재는 변호사인 그는 지난 2월 법복을 벗으면서 다량의 소송문건 파일을 갖고 나온 것으로 파악돼 검찰의 타깃이 됐다. 유 전 연구관은 "추억삼아 가져왔다"고 했지만 그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는 동안 문건파일과 컴퓨터 하드디스크까지 파괴해버렸다. 사법농단 수사에서 불거진 일이지만 본류와는 거리가 있는 별건인 셈인데, 서울중앙지법 4명의 영장담당 판사 중 누가 이 사건 심리를 맡든 곤혹스런 입장에 처할 것은 분명해보인다.사법부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은 최근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자료 사진

[포쓰저널=강민혁 기자] 유해용(52)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된 전, 현직 판사 중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유 전 연구관이 첫 사례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 검사)은 18일 유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유 전 연구관에게 공무상 비밀누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공공기록물 관리법률위반 절도,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유 전 연구관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인 2014년 2월~2016년 2월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 그후 2017년 2월까지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냈다. 올 2월 법복을 벗기전까지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했고 퇴임 후 서울 서초동에 변호사사무실을 개업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는 서울법대 84학번, 사법연수원 19기 동기 관계다. 드루킹 사건에 연루돼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의 변호인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유 전 연구관은 대법원 재직  당시 후배 판사들에게 USB(이동식 저장장치)에 소송 관련 문건들을 담아오라고 지시해 모은 자료를 퇴직시 법원에 반환하지 않고 사적으로 소지하고 있었다.

애초 유 전 연구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의료진' 김영재 원장의 부인 박채윤씨의 특허소송 관련 자료를 수집해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건넨 혐의로 검찰의 사정권에 포착됐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 5일 유 변호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유 전 기획관의 컴퓨터에서 다량의 소송 관련 문건을 발견했다. 

이후 검찰은 이들 문건을 확보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지만 영장담당 판사에 의해 번번히 기각당했다. 
그 사이 유 전 연구관은 해당 문건들을 모두 파기했다고 지난 10일 오후 법원행정처에 통보했다. 

검찰 관계자는 "유 전 연구관이 들고 나온 대법원 문건들이 대부분 대외비에 해당하는 데다 사건 당사자들의 개인정보가 그대로 담겨 있는 등 혐의가 무겁다고 보고 구속 수사하기로 했다"며 "혐의가 중하고, 증거인멸 우려가 단순한 우려를 넘어 현실화 됐기 때문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통상 이런 상황에서 구속수사를 해왔다"고 설명했다. 

유 전 연구관의 구속 여부는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 판사 중 한명에 의해 결판나게 된다.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영장 조차 대부분 기각한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 판사들이 유 전 연구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할 지 주목된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심사는 박범석(45, 사법연수원 26기), 이언학(51, 사법연수원 27기),허경호(44, 사법연수원 27기), 명재권(51,사법연수원 27기) 등 4명의 부장판사가 전담하고있다. 

명재권 부장판사는 검찰출신으로 법관이 된 케이스인데 9월2일부터 영장전담 판사에 추가보임됐다. 나머지 3명은 지난 2월 법원 정기인사때 영장전담으로 발령받았다.

'소송 문건 유출'과 관련해 검찰은 유해용 전 연구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두차례 청구했지만 두번 다 기각당했다.

첫번째 영장 심사를 맡은 이는 이언학 부장판사였다. 그는 지난 6일 유 전 연구관의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 "문건 유출은 부적절한 행위일 뿐 죄가 되지 않는다, 유출 자료 압수수색은 재판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수 있다”는 등이 기각이유였다는 것이 검찰의 전언이다. 

두번째 영장도 기각됐는데, 당시 담당은 박범석 부장판사였다. 그는 영장청구 대상인 유 전 연구관과  2013~2014년 대법원에서 재판연구관으로 같이 근무한 적이 있어 특히 주목을 받았다. 

박 부장판사는 “대법원 재판자료를 반출해 소지한 것은 대법원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나 죄가 되지는 않는다. 이 자료를 수사기관이 취득하는 것은 재판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수 있고, 징용소송이나 위안부 소송, 전교조 관련 소송에서 법원행정처 문건이 재판의 형성과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증거수집을 위한 압수수색 단계에서 이런 이유로 영장을 기각하는 것은 "판사가 수사를 지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강력 반발했다. 

박범석 부장판사는 8월26일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 박채윤씨의 특허소송 자료 유출 의혹 관련해 유해용 전 연구관에게 청구된 압수수색영장도 기각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의 최근 발언들이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사실상 입을 닫고 있던 김명수 대법원장은 "적극적인 수사협조"를 약속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13일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최근 현안과 관련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드린 것에 대해 사법부의 대표로서 통렬히 반성하고 다시 한 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문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법부에 쌓여온 폐단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다시는 이러한 폐단이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개혁을 이루는 것이 지금 내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사법행정 영역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 협조를 할 것이다.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는 분들이 독립적으로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신속하고 공정하게 진실을 규명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같은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기념사를 통해 "지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온전한 사법 독립을 이루라는 국민의 명령은 국민이 사법부에게 준 개혁의 기회이기도 하다. 의혹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하며, 만약 잘못이 있었다면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판사들과 악수하고 있다. 여기서 문 대통령은 사법농단과 관련해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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