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 LG에너지에 합의금 2조 원 지급
국내외 쟁송 모두 취하, 10년간 추가 소송않기로
불확실성 해소됐지만 'K-배터리' 이미지 타격
"한국, 미국 초대형 로펌들만 배불려" 지적

SK이노베이션이 약 3조원을 투입해 미국 조지아주 커머스에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 SK는 11일 LG에너지솔루션과 배터리 소송 종식에 합의함으로써 이 공장 건설과 운영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두 회사의 합의에는 조지아공장의 폐쇄를 우려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적극적인 합의 종용과 중재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출처=클레이코 누리집

[포쓰저널=정환용 기자] LG와 SK가 자동차 배터리 소송전을 일단락했다. ·

파국을 맞기 전에 두 회사가 타협점을 찾은 건 다행이라는 반응이 우세하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대격변기에 국내 기업끼리 치고 받는 집안싸움이 장기화되면서 고조됐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는 일단 해소됐다.

SK의 패배로 끝났지만 LG도 실익은 별로 없을 전망이다. 소송전 자체가 속성상 'K-배터리'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 이미지만 남길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미국의 대형 로펌 변호사들 주머니만 채워준 꼴이 됐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걸핏하면 미국 법정에 소송을 내고 여론전을 벌이는 관행 아닌 관행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LG에너지솔루선과 SK이노베이션은 11일 각각 임시 이사회를 열어 국내외에 계류중인 배터리 관련 쟁송을 모두 끝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두 회사는 미국 행정부 소속 준사법기관인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 연방지방 법원 등에서 영업비밀, 특허 침해 관련 쟁송을 벌여왔다.

소송전은 LG가 2019년 4월 ITC에 SK를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내면서 본격화됐다.

이에 SK가 같은해 9월 ITC와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LG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를 제기했고, 그 직후 LG도 ITC와 법원에 같은 종류의 소를 추가로 냈다.

이 중 첫번째 결론으로 ITC가 2월10일 영업비밀 침해소송에서 LG의 손을 들어줬다. SK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없는 한 향후 10년간 수출, 판매 등 미국에서의 배터리 사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특허소송에서는 ITC가 이달초 SK에 유리한 예비결정을 냈지만 8월로 예고된 최종결정 결과는 여전히 안갯속이었다.

국내서도 양사는 형사고소, 특허침해, 손해배상 등 각종 쟁송을 진행중이었다.

두 회사가 이날 전격 합의에 이른 데는 바이든 행정부의 압력성 중재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는 최근엔 워싱턴DC를 무대로 로비전으로 세월을 보냈다.

SK는 ITC 결정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을 이끌어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고, LG는 이를 저지하기 위한 방어전을 펼쳤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통인 김종훈 이사회의장을 현지로 급파하고 민주당 정부 고위 관료 출신들을 영입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법무부 부장관을 지낸 샐리 예이츠, 환경보호청(EPA) 청장 출신 캐럴 브라우너 등이 SK를 위해 뛰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바마 정부 때 에너지부 장관을 지낸 어니스트 모니즈 등을 내세워 방어전을 펼쳤다.

바이든 행정부는 백악관을 대신해 무역대표부(USTR)가 나서 적극적으로 양사의 합의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계인 케서린 타이 USTR 대표가 양측을 수차례 직접 접촉해 합의를 재촉했다는 후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거부권을 행사하면 지적재산권 보호라는 정책기조에 역행하게 되고, 거부권 행사를 거부하면 조지아주 SK공장 2600여개 고급 일자리와 함께 어렵게 확보한 민주당의 조지아주 정치적 기반까지 날아갈 형국이었다.

조지아주는 전통적으로 공화당 텃밭이지만 지난해 11월 대통령선거와 올초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잇따라 민주당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2일 미국에서 열린 서훈-제이크 설리번 간 한미 안보실장회의에서도 LG-SK 배터리 분쟁이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세균 국무총리를 비롯한 한국 정부도 여러 경로를 거쳐 합의를 종용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합의가 불발되면 두 회사는 바이든 정부에 의해 미운털을 넘어 반(反) 민주당 기업으로 낙인이 찍힐 수 있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올해가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시대적 분기점이라는 점도 두 회사의 타협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세계 전기차 배터리 입찰 물량은 총 1.4TWh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탑재량인 142.8GWh에 비해 10배 급증한 수준이다.

이 초기 경쟁에서 한번 밀리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살아남기는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 일본이 '한국 배터리 타도'에 기를 쓰고 있는데다, 유럽과 미국도 본격적으로 배터리 내재화를 위한 공장 신·증축에 나섰다.

이 와중에 2년째 소송전을 벌이며 시간과 돈, 역량을 허비했으니 SK, LG도 탈출구가 절실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나라 배터리 업체끼리 소송전을 벌이는 건 LG, SK 밖에 없다는 지적도 압력요소가 됐을 것이다.

두 회사가 미국 소송을 위해 쓴 변호사 수임료, 고문 자문료 등만 각자 수천억원대라는 말이 돈다.

LG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과 미국 최대 로펌인 레이썸 앤 왓킨스(Latham & Watkins)을 법률 대리인으로 내세웠다.

특허 관련 소송에는 덴톤스(Dentons), 피시앤리처드슨(Fish & Richardson)라는 대형 전문 로펌을 추가 투입했다.

LG는 2019년 소송전 직전 내부 법무팀도 대폭 강화했다. 판사 출신으로 LG전자 법무팀장이던 권오준 부사장(현재 퇴임)이 LG화학으로 옮겼고 '국정농단' 최순실(최서원)을 수사한 한웅재 전 검사도 전무로 영입했다.

LG에 비하면 SK이노베이션은 상대적으로 격이 떨어지는 법무 진영으로 맞섰다.

국내 로펌으론 화우를 주력으로 선임했고, 미국에서는 워싱턴DC 소재 로펌 코빙턴앤벌링(Covington & Burling)한 곳만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본사 법무팀에도 별 변화를 주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양사가 이번 쟁송에서 변호사 수임료와 고문 자문료로만 최소한 5천억원이상을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합의금이 2조원으로 역대급인 것도 LG의 소송비용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SK가 물려주기로 한 2조원은 ITC 결정으로 인한 합의금 중 역대 최고 규모다.

지금까지 최고 기록은 2011년 코오롱인더스트리가 듀퐁과의 ITC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물려주기로 한 9억1999만 달러(약 1조원)이다.

파기환송 등을 거쳐 코오롱이 2014년 실제로 지급한 합의금은 2850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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