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경제3법' 재계 반발 불구 국민의힘 필리버스터도 없이 일사천리 가결
공정거래법 개정안, 사익편취 '지분 20%' 이상 일원화...현대글로비스 등 영향
금융복합기업집단법, 삼성·한화·미래에셋·DB 등 6개 그룹 건전성 규제 강화
상법개정안, 감사위원분리선출·의결권 3% 제한..다중대표소송제 신설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포쓰저널] 문재인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이자 더불어민주당의 경제 민주화 총선 공약인 상법·공정거래법·금융복합기업집단법 등 '공정경제 3법'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계가 이 법안들을 '기업규제 3법'이라 부르며 극렬하게 반대하는 가운데 국민의힘 의원들의 저항도 강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필리버스터 신청도 없이 일사천리로 법안 통과가 진행됐다.

상법 개정안이 찬성 154명, 반대 86명, 기권 35명으로 가결된데 이어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찬성 142명, 반대 71명, 기권 44명으로 통과됐다. 금융복합기업집단법(금융융그룹감독법)도 찬성 181명, 반대 68명, 기권 20명으로 가결됐다.

◇ 40년만의 공정거래법 개정...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지분 20%로 일원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은 법 제정 이후 40년 만의 전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은 대기업집단의 부당한 경제력 남용과 사익추구 행위 등의 억제를 목표로 2021년 말부터 시행된다.

개정안은 우선 ‘일감 몰아주기’로 불리는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내부거래) 규제대상 회사 기준을 현행 총수일가 지분 상장 30%·비상장 20% 이상에서 상장·비상장사 모두 20%로 일원화해 확대했다.

또 이들 기업이 지분 50%를 넘게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 범위에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규율 대상 회사는 현행 210개에서 598개(올해 5월1일 기준)로 388개 늘어난다.

개정안은 또 지주회사의 자·손자회사의 지분율 요건을 상장사는 20%→30%, 비상장사는 40%→50%로 상향 조정했다.

또 대기업집단 공익법인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상장회사는 경영권 꼼수 승계를 막기 위해 특수관계인 합산 15%까지만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대기업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보유 허용도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에 포함돼 국회를 통과했다.

일반지주회사가 보유한 CVC는 자기자본의 200% 이내 차입이 가능하며 펀드 조성 시 총수일가, 계열회사 중 금융회사의 출자는 받을 수 없다. 총수일가 관련 기업, 계열회사, 대기업집단에는 투자할 수 없다.

CVC 투자금을 회수하는 단계에서 지분·채권을 총수일가나 지주회사 체제 밖 계열사에 매각하지 못 하게 하는 조항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추가됐다. CVC 관련 행위 금지조항을 어겼을 경우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형벌 규정도 새로 마련됐다.

개정안에는 또 사업자들이 가격·생산량 등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교환하는 것도 일종의 담합으로 제재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공정위는 해당 정보교환이 시장 경쟁에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혔다는 것을 입증해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사익편취 규제대상 확대에 따라 대기업들은 규제를 피하기 위해 내부 거래를 줄이거나 총수 일가의 지분을 매각해 지분율을 낮춰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가장 먼저 영향권에 든다. 정의선 회장과 부친 정몽구 명예회장은 현대글로비스의 지분 29.9%를 보유, 이번 개정으로 지분 10% 정도를 처분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LG, KCC건설, 태영건설 등의 내부거래 비중도 지난해 기준 23.1%에 달한다.

삼성생명, ㈜SK, 한화 등도 규제 대상에 새롭게 편입된다. 삼성생명은 총수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20.82%, ㈜SK는 28.59%, ㈜한화는 26.76%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기업집단이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삼성물산이 100% 지분을 보유한 삼성웰스토리, 현대차그룹 계열 현대머티리얼의 100% 자회사 현대첨단소재, SK디스커버리가 60%대 지분을 보유한 SK가스와 SK플라즈마도 규제 대상이 된다.

지주회사의 자회사 의무 지분율을 상향하면서 SK하이닉스를 계열사로 두는 중간지주회사 전환 작업을 추진중인 SK텔레콤은 현재 20.1%인 SK하이닉스 지분율을 30%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다만, 핵심 쟁점으로 꼽인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는 재계 반발을 고려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빠져 유지됐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경제 관련 사건은 공정위만 고발할 수 있고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것으로 앞으로도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담합 수사에 나설 수 있다.

당초 정부안은 사회적 피해가 큰 가격·입찰 담합(경성담합)에 한해서는 전속고발권을 폐지하자는 내용이었다.

개정안은 대신 과징금을 두배로 올렸다. 담합에 대한 과징금을 매출액의 10%에서 20%로, 시장 지배력 남용 행위 과징금은 3%에서 6%로, 불공정 거래 행위 과징금은 2%에서 4%로 상향했다.

◇ 금융복합기업집단법 신설...삼성·한화·미래에셋 등 6개 그룹 규제 강화

금융복합기업집단법(금융그룹감독법)도 새로 만들어졌다.

증권·카드·보험 등 금융사를 2개 이상 운영하는 자산규모 5조 원 이상 대기업을 금융당국이 감독·검사하도록 하는 규제 법안이다. 당초 금융그룹감독법이었지만 전날(8일) 배진교 정의당 의원안을 일부 반영해 법안명을 변경했다.

삼성, 현대차, 한화, 교보, 미래에셋, DB 등 6개 그룹이 대상으로 이들 그룹의 보고·공시·재무건전성 관련 규제가 강화됐다.

이 법은 금융그룹의 대표회사로 선정된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그룹 위험관리 기구와 내부통제 체계를 마련해 운용하도록 하고 있다.

또 금융그룹의 내부거래·위험집중이 금융그룹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 계열사로부터의 위험 전이 가능성 등 그룹 차원의 위험을 평가한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자본을 적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대표회사는 금융그룹 차원의 자본적정성 현황과 위험요인 등을 금융위원회에 보고하고 이를 공시해야 한다.

금융위는 자본적정성 비율이나 위험관리실태 평가 결과가 일정 수준에 미달하는 경우 자본 확충, 위험자산 축소 등 경영개선계획의 제출과 이행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비금융사의 계열사 주식 취득 한도를 법으로 규정하는 조항은 제외됐다. 이 조항이 법제화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보유 지분(현재 8.8%) 일부를 강제매각해야 한다.

또한 그룹 내 금융사-비금융사 간 임원 겸직·이동 제한, 금융당국의 비금융사에 대한 직접적 자료요구권, 대주주 주식 처분명령 등의 조항도 제외됐다.

개정법은 또 적대적 M&A와 무관한 계열사 간 합병일 경우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했다.

새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되는 기업집단이 지정 이전부터 보유하고 있는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도 제한된다.

◇ 상법 개정안...감사위원 분리 선출, 최대주주 의결권 3%로 제한

상법 개정안은 상장회사가 감사위원 중 최소 1명을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도록 하고, 최대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은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일괄 선임한 뒤 이 중 감사위원을 선출해 왔기 때문에 이미 감사가 최대주주의 영향력 하에 있어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개정안은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고 최대주주의 의결권까지 제한하도록 했다.

다만, 논의 과정에서 정부안은 재계의 주장에 한발 물러나 수정됐다.

당초 정부안은 감사위원(1인 이상)을 선출할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더해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했으나, 사외이사를 감사위원으로 선출할 때 한해 지분 합산 요건을 적용하지 않고 각각 3%를 인정하는 수정안으로 통과됐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다중대표소송제도'도 신설됐다. 하지만, 소 제기 요건이 당초 정부안인 상장사 지분율 0.01%에서 0.5%로 대폭 강화됐다.

/그래픽=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