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승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별세(종합)

2014년 급성심근경색증 쓰러진 후 6년5개월간 투병
1987년 2대 회장 취임, 삼성 세계일류기업으로 키워
15조원대 삼성전자 주식 보유, 미완의 경영 승계 과제로

염지은 승인 2020.10.25 12:22 | 최종 수정 2020.10.25 20:01 의견 1
1987년 삼성 2대 회장에 취임한 이건희 회장./사진=삼성


[포쓰저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이 회장은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삼성전자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 회장 별세 소식을 전하며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2014년 5월 10일 밤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고 6년 5개월동안 병상에 있었다. 최근까지 자가호흡을 하며 지낸 것으로 알려졌으나 급성심근경색증이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선친인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1993년에는 신경영선언을 통해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닦았다. 삼성전자 임원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소집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작심발언으로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품질경영, 질경영, 디자인경영 등으로 대도약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6년 글로벌 TV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애플을 따라잡고 스마트폰시장 1위를 달성했다. 메모리 반도체, 스마트폰 등 20여개 품목의 글로벌 1위를 일궈냈다.

이 회장의 재임 기간 삼성전자는 세계 일류 기업의 면모를 갖췄다.

취임 당시 10조원이었던 매출액은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으며,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2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나 증가했다.

1974년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반도체사업에 착수,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하고 1992년 이후 20년간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했다.

2001년 세계 최초 4기가 D램 개발, 2007년 세계 최초 64Gb 낸드 플래시 개발, 2010년 세계 최초 30나노급 4기가 D램 개발과 양산, 2012년 세계 최초 20나노 4기가 D램 양산 등 세계 반도체 역사를 새로 썼다.

1995년 시작한 자동차 산업은 실패해 아쉬움을 남겼다. 1998년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다 2000년 르노에 매각됐다.  

2004년 반도체공장을 방문한 이건희 회장./사진=삼성
2013년 10월 28일 신경영 20주년 만찬./사진=삼성
2013년 9월9일 제125차 IOC총회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삼성


이건희 회장은 인재제일의 철학을 바탕으로 '창의적 핵심인재'를 확보하고 양성하는데도 힘썼다. IOC 위원으로 활동하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기여하는 등 국내 스포츠 발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세금포탈과 금품수수, 불법 경영승계를 위한 편법 등 각종 의혹으로 검찰 수사와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이 터진 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2010년 3월 삼성전자의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아야 했으며, 특검팀에 의해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되자 2008년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을 발표했다. 이 회장은 양도소득세 456억원을 포탈한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았다.

정경유착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이 회장은 1996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이 불법 정치자금을 모은 '차떼기 사건'에 각각 연루되기도 했다.

정경유착과 세습을 위한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 오늘날 재벌기업의 폐해가 모두 이건희 시대에 일어났다는 비판도 나온다.

애초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맏형인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호암의 눈밖에 나면서 후계자로 낙점된 이 회장은 2012년엔 이맹희 전 회장과 상속 분쟁을 겪기도 했다.

이 회장이 1995년 이 부회장에게 61억원을 증여하며 시작된 삼성의 경영권 승계는 아직도 완성되지 못한체 진행중이다.

그가 병상에있는 동안 아들은 부정한 청탁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 최서원에게 뇌물을 건넨 사실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을 주도한 혐의가 드러나 법정에 섰다.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15조원에 달하는 삼성전자 주식의 상속 문제 등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은 과제로 남았다. 

1972년 장충동 자택에서./사진=삼성
이병철 선대회장과 함께 한 이건희 회장의 유년시절./사진=삼성


고인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경남 의령 친가로 보내져 할머니 손에서 자라다 1947년 상경해 학교를 다녔다. 연세대 상학과 중퇴후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1966년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홍라희 여사와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장례는 4일장으로 28일 오전 발인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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