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이재용·최지성·김종증 등 개입, 한투증권 보고서 수정"
삼성에 불리한 내용 삭제 위해 삼성증권 윤용암 사장도 출동
김남구·이재용 대학원 동창...합병후 로직스 상장 한투가 주관

[포쓰저널=김성현 기자] 한국투자증권이 2017년 7월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직전 관련 기업보고서(리포트) 왜곡과 관련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검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당시 삼성 수뇌부들이 한투증권 고위층과 결탁하거나 사업상 불이익 등 압력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연구원들이 작성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리포트에  담긴 삼성에 불리한 내용을 삭제하고 투자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진  배경에 이재용 부회장과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의 재계 인맥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21일 금융당국 관계자는 “한투증권이 기업보고서를 통해 특정 기업에 이익을 안겨줬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조사 후 관련 조치가 있을 수 있다”며 “재판과정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1일 삼성그룹 불법 경영승계 의혹과 관련해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핵심 관련자 11명을 재판에 넘긴 상태다. 10월 22일 첫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공소장에는 이재용 부회장,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사장), 이왕익 삼성전자 부사장이 2015년 7월 초순경 한투증권 소속 연구원 이경자씨와 윤태호씨가 작성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기업리포트를 사전에 입수해 배포 전 부정적인 내용을 삭제하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은 공소장에 “이재용을 비롯한 피고인들이 투자자들의 합리적 의사 결정을 방해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투자증권으로 하여금 합병 성사에 불리한 내용은 제외하고 유리한 내용만 보고서에 반영해 발표하도록 했다”고 적시했다.

한투증권 이경자 연구원이 작성하고, 2015년 7월 6일 배포된 ‘합병 무산 가정 시 삼성물산 영향과 ISS 밸류에이션 비교’ 보고서는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주주총회일(2015년 7월17일)을 앞두고 다수의 언론에서 다뤄졌다. 

2015년 7월 6일 한국투자증권이 배포한 ‘합병 무산 가정 시 삼성물산 영향과 ISS 밸류에이션 비교' 리포트는 당시 다수의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삼성물산의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ISS의 분석에 반박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네이버뉴스 캡쳐

포쓰저널이 해당 보고서를 입수해 살펴보니, “합병이 부결된다면 삼성물산의 주가는 상승 가능성보다 하락 가능성이 높다”, “삼성물산의 건설사업부가 단독으로 생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합병을 전제로 하지 않은 삼성물산의 영업가치는 훼손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당시 세계 1위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는 삼성물산이 적정가치 대비 49.8% 할인된 값에 합병비율이 산정돼 제일모직에 지나치게 유리한 합병이라고 지적했다.

한투증권 보고서는 이런 ISS의 분석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경자 연구원은 ▲보유 상장주식 계산시 전량 마켓밸류(market value) 가정 ▲영업가치 계산 시 EBIT(세전영업이익) 기준으로 호황기인 2014년 실적을 사용 ▲ISS가 제시한 EBIT에는 관계사 배당금 중복 계상 ▲영업가치 계산 시 사용한 동종업계(peer group)은 정상 손익이 나오지 않은 상태로 밸류에이션 지표가 높게 형성된 상황 ▲기타자산 대부분은 해외 현지법인으로 영업용 자산 등을 이유로 ISS의 분석에 오류가 있다고 분석했다.

ISS는 삼성물산의 주당 적정 가치가 11만234원이라고 판단했는데, 한투증권은 5만9629원이 적정가치라고 분석했다.

보고서가 말하는 바는 삼성물산에 대한 고의적 저평가는 없으며, 제일모직과의 합병비율(1대 0.35)이 적정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입수한 해당보고서 초안에는 다른 내용이 포함돼 있다.

검찰이 입수한 보고서 초안에는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이벤트 소멸, 지주 프리미엄 가치 하락, 바이오젠의 콜옵션으로 인한 제일모직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가치 하락 등으로 합병 성사 시에도 주가 하락이 예상된다는 내용 ▲합병 전 제일모직 주가는 합병 및 지배구조 개편 프리미엄이 반영된 주가이기에 합병 이전 주가 수준 밴드(14만~16만원)를 뚫고 내려갈 것으로 전망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내용은 윤태호 연구원이 작성한 것이었다.

한국투자증권이 2015년 7월 6일 배포한  ‘합병 무산 가정 시 삼성물산 영향과 ISS 밸류에이션 비교’ 기업보고서 일부. 보고서에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무산될 경우 삼성물산의 영업가치 훼손이 불가피해보인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 한투 보고서 캡처

검찰에 따르면 이왕익 부사장은 2015년 7월 초 삼성물산 IR팀을 통해 해당 보고서 초안을 입수했으며, 이후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 미전실 금융 일류화팀장 임모씨를 통해 한투증권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불리한 내용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실제 발표된 보고서에서는 윤 연구원이 작성한 제일모직 고평가, 합병 후 주가하락 가능성 등의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검찰은 “이재용, 최지성, 김종중, 이왕익은 합병 성사 시 주가 하락 가능성 등은 알리지 못하도록 하면서 이 사건 합병 성사돼야 삼성물산 주가가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만을 알려 왜곡된 정보를 투자자에게 유포했다”고 했다.

금융당국은 한투증권이 특정 기업의 요청에 따라 투자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면 제재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감원 등 관련 기관도 검찰 공소장을 보고 나서야 해당 사실을 알게됐다”며 “이번 사건이 투자자 기망 또는 금감원의 증권사 영업행위 감독사항에 해당되는지 향후 재판과정을 지켜볼 예정이다”고 말했다.

그는 “허위 리포트가 주가에 영향을 주거나 특정기업에 영향을 줬을 경우 제재대상이 될 수 있다. 지나치게 긍정적인 전망만 내는 것에 대해서도 '지도' 처분이 나간 바 있다”며 “다만 삼성그룹과의 뒷거래를 통해 보고서를 조작한 등의 내용은 금융당국이 아닌 검찰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이 진행 중이니 양측의 증거 공방을 통해 어느정도 사실이 가려질 것”이라며 “아직은 혐의가 있다고 예단하기는 이르다”고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김남국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사진=연합뉴스

삼성이 국내 유수의 대형 증권사 리포트를 사전에 입수하고, 그 내용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남구 한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의 관계에서 비롯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남구 회장은 이재용 부회장과 일본 게이오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를 함께 지낸 동문이다. 김 회장은 1991년에, 이 부회장은 1995년에 석사과정을 마쳤다.

비슷한 시기 같은 학교에서 공부한 두 사람은 현재까지도 교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투증권은 해당 보고서 작성 이후에도 삼성그룹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한투증권의 자회사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주주총회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당시 삼성물산 지분 2.85%(약 466만주)를 보유, 국민연금 다음으로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이듬해인 2016년 11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코스피 상장 대표주관사로 한국투자증권와 씨티증권을 선정했다.

IPO(기업공개) 최대어로 꼽히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대표 주관사를 맡은 한국투자증권은 청약증거금으로만 약 3조8000억원을 예치하고, 주관 수수료로 36억원을 벌어들였다.

당시 참여연대는 “한국투자증권이 삼성바이오가 개발 중인 바이오시밀러의 성공확률 과대 계상 등을 통해 매출액과 이익률을 부풀린 보고서를 제출했다”며 “2020년 매출액이 7조8000억원에 달한다는 황당한 가정을 동원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주관사 선정 당시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였던 유상호 한투증권 부회장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9월 이 사건과 관련해 한국투자증권 본사에 대한 입수수색도 실시했다.

한국투자증권 측은 기업보고서 왜곡과 검찰의 기소내용 등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별도의 입장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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