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대우조선 인수무산 때 62% 돌려받은 사례 있으나
계약 후 팬데믹→'매각대금 1조 할인' 거부해 사정변경 명분 약화
재실사 요구 거부→한화는 첫 실사도 노조방해로 무산 상황 달라

사진=아시아나항공
사진=아시아나항공

 

[포쓰저널=문기수 기자]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이 무산되면서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이 지급한 계약금(이행보증금) 2500억원을 돌려받을수 있을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4일 현산 관계자는 "계약의 거래종결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매도인 측의 선행조건 미충족에 따른 것이다"며 "아시아나항공 및 금호산업의 계약해제 및 계약금에 대한 질권해지에 필요한 절차 이행 통지에 대해 법적인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계약금 반환 소송 제기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하고 관련 판례와 법리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산과 금호 측이 계약금 반환을 놓고 법적공방을 벌이게 될 경우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무산 관련 소송이 주요 참고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화-대우조선해향 건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 발생으로 인한 사정변경과 실사 무산으로 계약이 중도에 무산됐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재실사 이슈가 문제된 현산-금호산업 건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한화-대우조선해양 관련 이행보증금 반환소송에서는 ▲ 불가항력적 상황 때문에 계약을 포기한 것인 지(사정변경의 원칙) ▲인수·합병 계약이 무산되는 과정에 매각 측과 채권단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했는지(실사 무산 문제)가 핵심 쟁점이었다. 

한화는 2008년 11월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 양해각서(MOU) 체결하면서 이행보증금 3150억원을 채권단인 산업은행에 지급했다.

이후 현장 실사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2009년 1월22일 매각협상은 최종 결렬됐다.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실사를 방해하는 바람에 계약이행이 불가능해졌다며 이행보증금 반환을 요구했고 산은이 이를 거부하면서 소송전에 들어갔다. 

당시 한화 측은 글로벌 금융위기 심화로 현저한 상황변화가 발생한데다 현장 실사마저 거부당했기에 귀책사유가 매각 측에 있고 이행보증금 반환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판단은 하급심과 대법원이 달랐다.

1,2심 재판부는 "(금융위기)경제 사정 때문에 금융시스템이 마비됐거나 대부분의 금융거래가 정지됐었다고 볼 수 없고, 대우조선해양이 상장기업으로 정보가 공개돼 있었기 때문에 확인 실사는 불필요했다"며 한화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대법원은 2018년 "한화가 막대한 이행보증금을 지급하고도 확인 실사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이행보증금 전액을 몰취하는 건 부당하게 과다하다"며 한화 측 손을 들어줬다.

결과적으로, 한화는 이행보증금의 62%에 해당하는 1951억원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대법원도 한화측 주장 중 실사거부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점만 인정했다. 한화가 주장한 또다른 파기 원인인 사정변경은 사실상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화가 산은과 MOU를 체결한 2018년 11월 이전에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브라더스 파산선언(2008년 9월15일)이 있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현산은 한화와 반대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현산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주식매매계약(SPA)을 공식 체결한 시점은 2019년 12월 27일인데, 코로나19 사태는 그해 12월31일 중국 우한에서 원인불명 폐렴환자가 다수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현산으로선 코로나19 팬데믹은 계약 체결 당시에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불가항력적 천재지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법원이 이를 이유로 현산 측의 손을 들어줄 지는 미지수다.

대법원 판례상 사정변경의 원칙에 따라 계약을 원점으로 되돌리려면 사정변경이 당사자가 예상할 수 없었다는 점 만으로는 부족하고, 당초 계약의 효력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신의와 공평에 현저히 반해야 한다.

이동걸 산은 회장이 매각 무산 전 정몽규 HDC회장에게 아시아나항공 매각대금을 1조원 가량 깍아줄 수 있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현산에는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손실을 매각 측에서도 부담하겠다고 했는데도 현산이 수용하지 않은 것은 그 자체가 공평 분담의 원칙을 거부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현산의 재실사 요구가 거부당한 것도 한화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

한화는 첫 실사부터 노조의 거부로 할 수 없었다.

현산은 코로나19 이전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4주간의 실사를 진행했다.

현산은 코로나19로 인해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는 이유로 12주간의 재실사를 요구했다가 거부당했다.

이 부분에 대한 승패도 법원이 재실사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일정할 것인 지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판사 출신 한 중견 변호사는 "대법원은 사정변경의 원칙에 의한 계약 파기를 거의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산은의 매각대금 할인 제의는 반환소송에 대비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만큼 현산이 법원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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